[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클래식발레 가치를 증명하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지젤>이 보여준 낭만발레의 숭고한 미학성 때문이다. 2025년 4월 18~27일(평자 19일 저녁공연 관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진행된 UBC <지젤>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발레의 형식미와 내재미를 보여줬다.

1984년 창단된 유니버설발레단은 한국 발레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민간발레단의 종가, 한국 발레를 견인한 춤의 산실이다. 월드 클래스 발레 스타의 산실이자 세계 발레의 메카로 자리하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1841년 6월 28일 파리오페라발레단 초연 이후, 180여 년의 시간을 잇고, 넘어선 이번 공연은 왜 ‘UBC 지젤’인지를 이성과 감성 양면에서 설득력 있게 이끌어냈다.

유니버설발레단 '지젤'ⓒ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첫째, 낭만발레의 전형성(典型性)이 충실하다. 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Romanticism)는 감정, 상상력, 휴먼성, 자유, 자연 등을 키워드로 한다. 화려한 기교, 몽환적 분위기, 낭만적 분위기는 ‘지젤’이란 발레의 꽃을 배태시킨 동인이다.

둘째, 서사와 이미지가 직조된 레퍼토리다. 사랑과 배신, 참회와 용서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서사성, 발레블랑(Ballet Blanc) 미학성이 집약된 이미지는 작품 전개뿐 아니라 감성의 파도가 되어 객석에 전달력을 높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이 작품에 대입하면, ‘서사’라는 로고스(logos), ‘이미지’라는 파토스(pathos)를 ‘UBC’라는 에토스(ethos)가 감싼 무대라 할 수 있다.

셋째, 사랑이란 이름의 미학적 발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의 제재이자 주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다. 순수, 배신, 광란, 숭고라는 다중적 의미를 지닌 사랑의 이름을 무대에서 알려야 하는 <지젤>에선 중요하다. 지젤과 알브레히트를 중심으로 힐라리온, 바틸드, 미르타, 윌리 등의 주요 배역들은 춤의 흐름에 따라 캐릭터성을 사랑이란 과녁을 향해 쉼 없이 달려 나가야 한다. 종착역은 ‘숭고하고 찬연한 사랑’이다.

1985년 <지젤> 초연 시 지젤을 맡았던 UBC 문훈숙 단장이 공연 전에 마이크를 잡는다. 해설발레가 아니면 통상 전막공연에서는 잘 하지는 않지만 동작 시범까지 보여주며 작품해설을 했다. ‘공연 전 발레 감상법 해설’은 UBC가 관객 친화형 발레단임을 환기시킨다.

'지젤'(서혜원, 드미트리 디아츠코프)ⓒ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사랑과 비극이 교차되는 1막의 라인 강변.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지젤(서혜원)의 등장에 박수소리 높다. 마을 처녀들과 지젤의 춤이 사랑스럽다. 귀족들의 행렬이 지젤과 조우된다. 군무와 이에 화답하는 지젤의 춤이 분위기를 무르익게 한다. 이어지는 디베르티스망이 시선을 끈다. 알브레히트(드미트리 디아츠코프)의 거짓말과 신분 차이로 충격에 빠진 지젤은 1막의 하이라이트인 광란의 춤을 춘다. 내적 심상(心狀)이 지젤의 뛰어난 극성(劇性)으로 상승된다.

'지젤'(서혜원)ⓒ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지젤>의 묘미 중 하나는 1막과 2막의 분위기 반전이다. 막 전환을 통한 서사와 이미지의 변화는 낭만발레의 기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지젤의 무덤을 찾은 알브레히트, 윌리의 여왕 미르타(이가영)의 등장 등 윌리들의 숲속 정경은 스산함과 몽환성으로 가득하다. 24명의 윌리 군무가 보여준 정교한 대열의 형식미와 비례미는 <지젤>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혼의 춤이다. 슬픈 영혼의 춤이 숭고한 사랑을 향해 처연히 달려가는 순간이다. 지젤의 역동적이되 부드러운 춤은 움직임의 대조만큼이나 다가올 운명에 대한 복선 역할로 충분하다.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는 이루어질 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서사와 서정이란 이름을 동시에 그려냈다. 사랑의 힘으로 알브레히트를 지켜낸 지젤은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젤를 향한 알브레히트의 회한과 절규가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UBC '지젤'ⓒ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발레단의 수석부터 솔리스트, 드미솔리스트, 객원까지 다양한 개성과 기량을 갖춘 단원들의 일자별 주역 배치는 총 11회 공연의 성공을 이끈 주인공이다. 코르 드 발레, 객원까지 출중한 무용수들의 역량은 UBC가 40여 년의 역사를 넘어 전진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무대는 유니버설발레단과 발레단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인 <지젤>의 예술성을 충분히 알린 시간이었다. <지젤>의 푸른 달빛 아래서 6월 <발레 춘향>을 기다려 본다.

이주영(무용평론가・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7dancetv@naver.com
Copyright(C)DANCETV,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자(c)댄스티브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UBC 지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