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완벽한 랑데부(rendezvous)다. 고전과 현대, 서양과 동양이 발레로 수렴됐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대표 레퍼토리 <발레 춘향>이다. <심청>과 더불어 K-발레의 양축인 <발레 춘향>이 2025년 6월 13~15일(평자 1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렸다.

고전의 현대적 수용은 문화콘텐츠 개발의 대표적 유형 중 하나다. UBC(단장 문훈숙)는 발레를 통해 작품화, 세계화하고 있다. 2007년 초연, 2014년 개정 초연의 역사만큼 롱런의 유장함을 지닌다. 서울 공연 전, 군포와 김해, 예술의전당 공연 후, 대구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UBC '발레 춘향'ⓒ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작품에서 주역인 춘향과 몽룡 캐스팅은 누굴까에 관해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 무대에서는 강미선-이현준, 홍향기-이고르 콘타레프, 한상이-이동탁이 호흡을 맞췄다. 필자는 강미선-이현준을 중심으로 임선우(방자), 오타 아리카(향단), 간토지 오콤비얀바(변학도) 출연 무대를 함께했다.

‘춘향’은 한국인이라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사랑 이야기다. 1, 2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 막이 주는 구성과 전개, 감정선이 다채로워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유효했다.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춘향'ⓒ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여운 가득한 음악이 영상과 함께 퍼진다. 춘향과 몽룡 집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조적 장면은 서사성을 부여해 효과를 높였다. 두 명의 남자무용수가 춘향을 그네 태운다. 군무가 합세한다. 심플하다. 그네 장면은 맥시멀리즘(maximalism)이 아닌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선택이다. 방자와 향단의 재치와 익살은 사랑과 자연스럽게 호응된다.

사랑의 2인무가 서정적인 음악 속에 어린다. 춘향과 몽룡의 만남을 싫어하는 몽룡 아버지 모습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장면과 오버랩 된다. 몽룡이 무대 왼쪽에서 사선으로 바람을 가르며 등장한다. 춘향을 리프트 한다. 고난이도 테크닉이 구현된 ‘초야 파드되’에 사랑이 더 깊어진다.

춘향(강미선)과 몽룡(이현준)ⓒ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사랑은 이별을 부른다. 몽룡의 이별 소식에 춘향과 월매는 억장이 무너진다. 짙은 먹구름 속 군무진과 몽룡이 무대 우측으로 태풍처럼 이동한다. 이별의 무게감이 압도적 미장센(Mise en Scène)을 창출한다. 춘향과 몽룡의 ‘이별’ 테마에 사용된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교향시 ‘보에보다(The Voyevoda)’에 근간한다.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선율이 폭발적이다. 이별의 성정이 음악을 통해 증폭된다.

왕이 단 중앙에 위치한다. 2막의 시작이다. 과거시험으로 문을 연다. 붓에서 마패를 바꿔 든 몽룡 모습이 당당하다. 춘향을 떠올린다. 변학도의 기생점고(妓生點考) 장면은 판소리에서나 한국무용 ‘춘향’에서도 흥과 분위기를 동시에 알려주는 주요 대목이다. 발레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을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몽룡이 옥에 갇힌 춘향을 찾아간다. 슬픔과 그리움 가득한 춘향의 솔로춤이 애잔하다. 고통받는 춘향이 죽기 직전 어사출두(御史出頭) 소리 높다. 마패가 태양처럼 빛난다. 남자 군무들의 위용에 탐관오리들의 줄행랑이 이어진다. 2막의 마무리는 춘향과 몽룡의 ‘해후 파드되’다. 절망 속 구원의 손길은 사랑이란 이름을 다시 쓴다. 감성과 테크닉이 공존해 춤적 질감이 높다.

'발레 춘향' 파드되ⓒUniversal Ballet_Photo by Lyeowon Kim

1막의 이별, 2막의 해후가 중심 역할을 한 <발레 춘향>은 차이콥스키의 음악(편곡 모토야마 후미요)의 힘이 크다. 유병헌 UBC 예술감독의 안무, 주역과 솔리스트, 군무진들의 고른 활약은 작품의 미학성을 견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춘향과 몽룡 두 명의 춤만으로 미감을 상승시킨 것은 백미다.

<발레 춘향>은 고전(古典)에서 신고전(新古典)을 창출했다. 고전의 현대적 수용 미학이다. 예술적 동시대성을 보여준 무대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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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UBC 발레 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