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의 박물관을 만났다. 신화, 텍스트, 몸의 각 요소는 하나를 위해 달렸다. 각 개체는 순환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은 숨을 쉬게 만든다. 엘엔와이댄스그룹(LNYdancegroup) 예술감독 이남영 안무 <디디다-생동>이다. 작품 타이틀 앞에 ‘신화의 무도’가 연결되어 있음은 함의가 크다. 일련의 작품을 통해 심연해진 미학성을 마주함은 지적 희열을 줌과 동시에 안무가, 교육자, 연구자로서의 이남영을 주목하게 했다.
2025년 5월 31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개최된 이번 작품은 작년 <몸의 고고학> 중 ‘디디다’를 다음 달 7월 3일, 일본 코마츠좌 극단 초청을 계기로 수정, 보완해 공연 전부터 관심이 컸다. 평자는 지난해 ‘몸으로 쓴 시간의 기억과 감각의 도상(圖像)’이라는 제호로 <몸의 고고학>에 대해 평한 바 있다. 몸의 근원성에 대한 천착은 탄탄한 문헌 및 움직임 리서치를 통해 수확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원형적 몸짓과 움직임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 동작 소스와 신체 언어의 ‘수행적 몸’의 움직임 치환은 고(古)에서 길어 올린 고(高)의 춤적 지층이다.
본 공연 시작 전, 역사와 시간의 지층을 무용수 3명이 무대 바깥 왼쪽에서 연다. 공연 시작과 함께 무대 중앙 앞쪽에 최시울이 서 있다. 무대 후방에서 여자 무용수(김서연) 1명이 서서히 도는 가운데 움직임의 컨택이 일어난다. 신화의 바람이 무대에 불어오는 듯 하다. 여자 무용수(이혜인, 최시울, 우다윤, 김예빈) 4명과 남자 무용수(최진한) 1명이 대지를 밟는다. ‘디딤과 대지’의 만남이자 숭고한 충돌이다. 땅의 소리가 서서히 퍼진다.
탐색과 감각의 조응이 느릿함 속 몽환적으로 이어진다. 비트감 있는 음악 속에 여자 무용수의 움직임이 고고학적 가치를 높인다. 특히 무대 중앙에서의 응집력 있는 구성미는 춤적 밀도를 수직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이 숨을 고른다. 경쾌함이 무대에 퍼질 땐 생의 질주를 보는 듯 하다. ‘디딤과 감응’이 잇댄 후, ‘디딤과 생명’의 자연스런 연결이 편안하다.
이혜인이 뛰기 시작한다. 함께 뛴다. 두 팔 벌려 뛴다. 디딤이 증폭된 춤의 고고학이 분사되는 황홀한 순간으로의 초대다. 이혜인의 숨소리가 무대에서 퍼져 나갈 때 원초적 몸짓이 아련하게 무대를 잠식한다. 잔향 깊다.
신화는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성과 공통의 기억을 담지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은 창작의 단초를 마련한 중요한 기제다. ‘구지가(龜旨歌)’, ‘해가(海歌)’,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 등에 기록된 고대의 움직임은 소중한 자산이 돼 몸의 지층에 보석같이 아로새겨졌다. 춤의 고고학과 몸의 고고학이 만나 춤추는 몸에 ‘헌정(獻呈)’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고고학적 풍경의 동시대성을 노래한 이 작품은 텍스트로 존재하는 신화의 수행적 몸짓의 독창적 해석이란 점에 의미가 크다. 대지라는 영원한 역사의 줄기 속에서 디딤이라는 울림이 춤으로 연결돼 상승작용을 한 것이다. 신체성의 기호성 발휘, 감각과 역사, 감정을 일깨운 이번 공연은 신화가 몸으로 수렴되고, 그 몸은 신화의 지층을 재탐색했다. 춤과 몸의 유기적 수행은 ‘디디다-생동’이 길어 올린 ‘신화(神話)의 무도(舞蹈)’ 그 자체다. 다음 디딤이 기다려진다.
이주영(무용평론가・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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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디디다-생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