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그럼에도, 바람은’

제38회 한국무용제전 대극장 경연 ‘Best Dance 춤연기상’ 수상작
김지성 안무, ‘그럼에도, 바람은’
삶의 여정 속 존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지혜의 시간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5.06 15:49 | 최종 수정 2024.05.07 08:21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무대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자연의 바람은 춤의 바람을 부르고, 춤의 바람은 마음의 바람에 조용히 침잠된다. 서정성 강한 전체적인 분위기 속 강렬함과 입체성 강한 전개는 내 마음의 바람을 응시해 너에게로 소리없이 밀어낸다. (사)한국춤협회(이사장 윤수미)가 주최한 제38회 한국무용제전 대극장 경연부문 ‘Best Dance 춤연기상’ 수상작 ‘그럼에도, 바람은’이다. 김지성풍경무용단 예술감독이자 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직무대행 김지성의 안무작이다. 2024년 4월 14일(토),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두 번째 무대를 장식한 이 공연은 삶의 여정 속 존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숭고하게 말한다. 희망이란 바람은 생태적 바람과 간절한 마음이 담긴 바람을 중첩시켜 함의를 더했다. 그 바람을 따라간 고요하되 묵직한 시간이었다.

김지성 안무, '그럼에도, 바람은'

무대 후방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일순간 장면이 전환된다. 군무진의 움직임은 어느새 바람이 돼 있었다. 시원성 강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움직임을 이어간다. 천천히 춤이 이동한다. 시린 새벽 공기를 가른다. 마음을 동요시키는 한국적 멜로디가 춤과 조응한다. 한국적 색채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누군가를, 어디를, 그 무엇을 부르는 바람의 손짓. 지향(志向)과 지양(止揚)을 교차시킨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성 발현이다. 바람이 또 하나의 바람을 부를 땐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숨을 내쉬게 한다. 안무자는 끝없는 삶의 여정 속 숨과 쉼을 바람과 연결시키는 매력적인 성찰과 춤적 구현을 이루어낸다. 이 작품의 힘 중 하나다.

제38회 한국무용제전 대극장 경연부문 ‘Best Dance 춤연기상’ 수상작

‘그럼에도, 바람은’ 작품은 기존 2인무 작품에서 시작됐다. 그 확장성을 이번 제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지성과 전건호의 남녀 2인무는 ‘숨죽인 합창’이라 부를 수 있다. 너를 향한, 아니 너를 위한 합창이다. 고요함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숭고미를 부여할 수 있는 미학적 성질 중 하나다. ‘움직임의 중력’을 넘어 ‘감정의 중력’이 교차된다. 메타성 강하다. 손지혜, 이세이, 유승아, 최혜린, 정선아, 최정은, 김태희, 최수인, 허이진은 바람의 심장이 됐다.

김지성풍경무용단, '그럼에도, 바람은'

천천히 사유하는 움직임이 내면적 층위를 오르내린다. ‘소리없는 격정’이 군무화 될 땐 크게 숨을 내쉴 수 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낙하하는 포그 분말을 강한 음악이 어깨를 내밀어 받쳐 준다. 안에서 밖으로의 이동이다. 내(內)에서 외(外)로의 전이가 주는 힘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는 기제뿐 아니라 생명성 발현이라는 삶의 가치 고양에도 역할을 한다.

음악적 합창을 넘어선 춤의 합창이 주는 아우라는 거센 바람소리처럼 깊다. 흔들리는 몸을 투사한 바람은 침묵이란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호명한다. 한 줄기 빛이 된다. ‘바람 참 달다’라는 안무자의 마지막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된다. 또 하나의 바람을 만든다.

'그럼에도, 바람은'

한국무동인회(韓國舞同人會・박시종 예술감독 및 안무자)의 상임이사이기도 한 안무자 김지성은 제32회 전국무용제 단체 경연부문에서 ‘我!수라’라는 작품으로 2023년도에 은상을 수상했다. 또한 제28회 국회의장상 전국예술대회에서는 명무부 대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안무작과 수상 경력이 보여주듯 전통과 창작을 넘나드는 무용가다. 한국춤계를 견인하리라 본다. 이번 경연 무대에서 보여준 ‘그럼에도, 바람은’ 작품은 그의 춤행보에 이정표를 마련한 시간이라 뜻깊다. 바람이 바람을 부른 하루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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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그럼에도, 바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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