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염원의 舞律

염원이란 무율을 정립하다
굿을 소재로 한 다섯거리의 춤
김연선의 춤, ‘염원의 舞律’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2.29 16:21 | 최종 수정 2024.02.29 16:29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간절한 기원인 ‘염원’. 무용가 김연선은 춤으로 염원을 노래했다. ‘김연선의 춤, 염원의 舞律’이다. 2023년 11월 28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진행된 이번 무대는 ‘굿을 소재로 한 다섯거리의 춤’이란 명확한 콘셉트만큼 김연선이란 무용가가 지닌 춤 역량과 확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지난 2020년 11월 17일, 코우스에서 개최된 ‘김연선의 춤, 本鄕’에 대해 ‘김연선의 춤은 본향(本鄕)이다’라는 제호로 평한 바 있다. 김진홍流 영남춤을 담아 이음과 담음, 전통과 미래의 다짐을 춤에 대한 겸손함으로 풀어낸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은 2023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 무대다. 김연선의 개인발표회 중 다수의 공연이 서울문화재단의 선정 무대로 된 것은 그의 예술성과 창작성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염원의 舞律’ 또한 명실상부했다. 다섯 레퍼토리 각 고유의 춤적 특질을 유지하되 구성과 연출(한수문 처용무 전승교육사)을 통해 창작성을 부여한 점은 의미있다. 특히 무형문화재가 아니면 잊혀질 수 있는 춤들의 무대화를 통해 오늘의 춤으로 되살리고자 한 노력은 박수받을만하다. 스승의 춤에 대한 경외심, 전통이란 숭고한 작업에 대한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김연선, ‘부정푸리-부정놀이춤’

대금소리가 춤을 부른다. 장단과 함께 김연선의 독무가 시작된다. 무굿 의식임을 알 수 있듯 복식과 춤사위가 선명하다. 차분하되 섬세하게 이끌어 간 ‘부정푸리-부정놀이춤’이다. 부정푸리는 굿을 시작할 때 부정한 것들을 깨끗하게 하는 굿거리다. 군웅오실터를 닦는 무굿 의식이다. 춤과 동시에 ‘정화(淨化)의 순도가 올라간다. 부채와 방울을 내려놓고, 양손에 긴 수건을 들고 춤을 이어간다. 수건의 흩날림 속 부정놀이춤의 묘미 가득하다. 후반부 신명어린 반주와 어우러진 춤은 경쾌함을 넘어 선 카타르시스마저 전달한다.

해금소리가 검무의 앞날을 바라본다. 무대바닥에 조명이 들어오며, 4명의 무용수(김수민, 최윤정, 노혜선, 김태라)가 중앙에서 춤빛을 드리운다. 무대 좌우 각각 2명이 앉은 채 칼을 잡는다. 섬광이다. 무대를 번쩍이게 한다. 대형 변화에 따른 활달한 움직임이 좋다. 반복되는 리듬속에 검(劍)의 리듬도 유쾌하다. 연풍대에선 절정으로 치닫는다. 박수소리 높다. ‘군웅의 춤-검무’는 군웅거리의 춤이다. 김진홍류 검무를 재구성했다. 군웅(軍雄)은 굿에서 장군, 무장의 모습이자 지켜주는 힘을 상징한다. 조명처리를 잘 해 검무가 지닌 입체성과 역동성을 부각시켰다.

‘군웅의 춤-검무’

이어진 무대는 김영은의 소리와 춤으로 시작된 ‘꽃노래굿-꽃춤’이다. 김진홍의 ‘꽃맞이춤’을 원전으로 한다. 스승의 춤에 대한 오마주(hommage)다. 꽃노래굿은 무사태평을 빈다. 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들어 있다. 동해안별신굿 후반부에 무녀들이 춤과 놀이를 하는 놀이인 꽃노래굿을 꽃춤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6명의 무용수(허은영, 김수민, 최윤정, 노혜선, 김태라, 박지혜)가 김영은의 춤에 합류해 염원성을 발휘한다. 무용수 각자가 꽃이 된 듯 원을 그려낸다. 화사한 춤맛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춤소리 높다. 춤의 원형성은 평화를 희구(希求)한다. 후반부의 경쾌한 소리와 움직임이 꽃노래를 부른다.

‘꽃노래굿-꽃춤’

피리소리가 춤을 알린다. 반주와 함께 도살풀이춤의 여정이 시작된다. ‘도당의 춤-도살풀이춤’은 살풀이춤의 원형 격이다. 경기도당굿시나위춤의 한 종목이자 대표 춤이다. 삶의 궤적 그 자체인 긴 수건을 양팔에 올려 춤을 일궈가는 김연선.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행복으로 출항한다. 그는 경기무속춤 중 어려운 기교가 많은 이 춤을 단단한 춤 학습과 연마에 기반해 자신의 춤으로 소화했다. 무대 공간을 폭넓게 쓰며, 도살풀이춤이 지닌 포인트를 짚어가며 춤을 완성해 간 무대다.

김연선, ‘도당의 춤-도살풀이춤’

피날레 무대는 ‘넋푸리-용선춤과 지전춤’이다. 김연선, 허은영, 노혜선, 김수민, 최윤정, 김태라, 박혜선이 함께했다. 이 춤은 김진홍 선생의 창작춤 ‘반야용선’을 오마주해 김연선의 용선춤으로 재구성하고, 지전춤은 김진홍류의 지전춤을 재구성해 선보였다. 아쟁소리가 낮게 깔리며, 넋을 부른다. 무대 우측에서 용선을 들고서 무용수 2명이 등장한다. 춤의 문을 연다. 김연선이 등장해 용선앞에서 염원의 지전춤을 서서히 길어올린다. 망자천도라는 굿의 제의식을 담았다. 본격적인 지전춤이 장단을 타고 넘는다. 짙은 구음 속 염원의 나래가 끝없다. 이별과 만남, 생과 사의 경계를 자신의 시그니처 춤인 지전춤을 통해 염원이란 방점을 찍는다. 군무로 넋을 위로하며 마무리 된다.

‘넋푸리-용선춤과 지전춤’

이정희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도당굿시나위춤 보유자와 김진홍 부산시무형문화재 동래한량춤 보유자를 스승으로 둔 김연선은 스승의 춤맥을 이번 굿을 소재로 한 다섯거리의 춤을 통해 제대로 구현했다. 염원이란 무율(舞律)이 정립된 시간이다.

‘넋푸리-용선춤과 지전춤’
'염원의 무율(舞律)' 포스터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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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염원의 舞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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