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삶과 죽음’, 영원한 인간의 명제다. 국립무용단이 죽음을 택했다. 그 죽음은 삶을 바라봤다. 국립무용단 <사자(死者)의 서(書)>다. 작년 4월 초연 이후, 올해 성남 등 투어를 거쳐 2025년 9월 17~20일(평자 20일 관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2025-2026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첫 작품으로 이 공연이 라인업 된 것은 무용단의 이 작품이 갖는 대표성과 예술성을 집약해 보여준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의 장례용 경전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빛으로 나오기 위한 책’으로 불렀다. 사후 세계에 대한 사상을 보여준다.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는 티베트 불교의 대성(大聖) 파드마삼바바의 <티베트 사자의 서>는 이 작품 탄생의 모티브이자 원천이다.
이 작품의 핵심인 망자(亡者)의 죽음 후 ‘49일간의 여정’에서 불교의 중유(中有) 사상과 내세관을 읽을 수 있다. ‘중유’는 사람이 죽어서 다음의 생(生)을 받을 동안을 일컫는다. ‘죽어 49일 동안’을 의미한다. 공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환영(幻影)’이다. ‘죽음 이후 세계는 단지 마음의 환영’임을 역설하는 힘이 이 작품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시작해 동양관이라는 강을 지나 한국적 컨템포러리 무용으로 수렴된 이 작품은 죽은 자의 의식과 환영을 통해 한국창작춤의 미학성을 발현했다.
의식의 바다(1장), 상념의 바다(2장), 고요의 바다(3장)로 이루어진 장별 구성은 동감과 감동을 동시에 이끌어 냈다. 서사와 이미지가 춤의 바다를 유영함으로써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게 만든 사유의 시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초연 후 밀도감을 높인 것은 이 작품이 업그레이드 된 이유 중 하나다. 작품 구성이 첫 번째 이유다. 전개의 속도감을 부여했다. 둘째, 50여 명의 인원에서 30명 가까운 인원으로 줄인 출연자들은 단순한 수적 감소가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 제공과 미니멀리즘 부여를 동시에 이뤄내게 했다. 전 단원이 주역(급)이라 할 수 있는 국립무용단은 초연에 비교해 주역 캐스팅을 확장에 다채로운 면을 관객들에게 제공한 점도 의미 있다. 장현수(죽음의 망자), 김미애(떠나는 망자), 조용진(죽음의 망자, 떠나는 망자), 이태웅, 박소영(회상의 망자) 등은 중량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원자, 정현숙, 이의영, 박수윤을 비롯한 무용단원들의 군무, 앙상블, 듀엣 등은 완성도를 높였다.
허공에 매달린 혼불들. 공연과 동시에 시선을 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서서히 군무진이 등장한다. 죽음의 길을 알린다. 숙연하되 숭고하다. 망자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위패를 두드린다. 망자의 길을 인도하는 내레이션이 무대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죽음의 강을 건너는 복잡다단한 심경을 장현수가 망자의 독무로 보여준다. 깊은 감정 처리가 의식의 바다에 흐른다.
망자가 지난날을 추억한다.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소환한다. 흡입력 강한 군무, 사랑의 2인무, 특히 무대 우측에서 사선으로 길게 뻗은 여자 군무가 이뤄내는 힘은 상념을 넘어선다. 남자 군무가 이뤄내는 작용과 반작용의 춤적 위용은 밀려가는 파도 소리에 실린다. 떠나는 망자는 고요하다. 담담하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마친다. 김미애의 춤적 처리가 좋다.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한 <사자의 서>는 초연 후 수정, 보완을 통해 예술적 미감을 더했다. 49일의 바다를 건너는 망자의 여정은 사유와 성찰로 오늘을 환영(歡迎)했다. 춤의 힘이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사진 제공 : 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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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국립무용단 사자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