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LEADING SPIRIT

긴장된 삶의 역설적 공존, ‘No Man’s Land’
침잠된 강이 된 말의 관계학, ‘Murmur’
가림다댄스컴퍼니의 ‘LEADING SPIRIT’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07.17 11:52 | 최종 수정 2023.07.18 10:09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가림다댄스컴퍼니(예술감독 손관중) 공연은 설렘을 부르는 무대다. 가림다가 주창하는 ‘앞선 정신(Leading Spirit)’이 무대미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1980년 창단 이후 현재까지 이 모토는 유효하다. 아니 진화한다. 2023년 가림다댄스컴퍼니 정기공연(2023.6.23~24,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선 두 안무자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이지희 대표 후임인 최재혁 대표의 어깨는 무거웠으리라 본다. 이에 부응하듯 이예진, 김은정 두 안무가는 자신만의 춤적 색깔을 채색하는데 성공했다. 각각 추구하는 안무 지향점은 차이가 있지만 사회와 삶이란 큰 바다 속에 인간이라는 중심을 길어올려 객석에 전달한 점은 공통분모다.

이예진 안무의 ‘No Man’s Land’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 평화에 대해 질문한다.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 현실임을 묵직하게 들려줬다. 작품명 ‘No Man’s Land’는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지만 그 의미는 1차대전 때부터 생겨난 ‘무인지대’다. 교전중인 적군 사이에 설정돼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안무가는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삶’을 전쟁의 산유물인 ‘No Man’s Land’에 비유했다. 긴장의 연속인 삶, 평화와 행복이 공존할 듯 아닐 듯한 경계를 적절하게 설정한 혜안을 보여줬다.

이예진 안무 ‘No Man’s Land’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후방에 연두빛 조명이 불을 밝힌다. 음(音)을 하나씩 짚으며 어둠 속에서 군무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처연함, 설렘, 평온함이 점철된다. 무대 오른쪽에서 남자 무용수가 등장한다. 여자 군무를 응시한다. 남녀 2인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무대 왼쪽 후방 단(壇)위에 여자 무용수 1명이 바이올린을 켠다. 왠지모를 감정의 중첩성이 보인다. 말 그대로 노 맨즈 랜드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힐 신은 여자무용수 두 명의 몽환적 분위기의 춤, 심박수를 높이는 음악 속에 여자 군무가 이어진다. 여자 무용수가 바이올린을 깨트린다. 순간 파열음이 강하다. 깨트림은 평화를 사라지게 하지만 다시금 행복을 부르는 단초가 되는 중의성을 지닌다. 이 작품은 남녀 무용수의 콘트라스트(contrast), 솔로와 군무, 듀엣 등 여러 유형별 움직임을 다각적으로 보여줬다. 힐 신은 여자무용수의 움직임은 몰입도를 배가시켰다. 오브제인 바이올린의 적극적 활용은 정적(靜寂) 속 파괴를 통해 ‘황폐한 조용함’에 대해 긴 화두와 여운을 동시에 남겼다.

‘No Man’s Land’

김은정 안무가는 마음이라는 내재된 얼굴이 지닌 심리적, 사회적, 인간적 관계에 대해 말한다. 작품 ‘Murmur’는 묻지 않은 말과 듣지 못한 말 사이의 간극에 대해 집요한 사유를 보여줬다. 속삭임과 소근거림을 오가는 ‘murmur’는 그 의미처럼 현상학적 측면도 다분하다. 시선, 심리, 관계, 상황이라는 다양한 변인들은 나와 너 사이를 지난하게 오간다. 그 간극을 무대로 호명한 안무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김은정 안무 ‘Murmur’

공연이 시작되면, 묵직한 음악 속에 무대위에 새(독수리)가 날고 있다. 새를 든 여자무용수의 움직임 후, 남자 무용수 1명이 무대 우측 후방에서 등장한다. 여자 군무의 회전은 새의 외침이 된다. 이는 세상에 대한 외침이다. 나를 향하기도 한다. 흰옷 의상입은 여자무용수 9명이 등장해 전진, 후퇴를 반복한다. 남자무용수 2명이 가세한다. 반복과 질서 속 자유를 향한 움직임이 경쾌하다. 음악도 힘을 싣는다. 여자무용수가 새를 놓는다. 남녀 2인무 가운데 검은 의상을 입은 군무가 무대를 감싼다. 음악이 감정선에 주효한다. 서투른 관계속에서 자칫 존재 가치가 희석될 수 있는 모습을 수면 위로 잔잔히 끌어 올렸다. 새라는 오브제의 활용, 블랙&화이트로 대비되는 군무진 의상, 회전을 통한 소용돌이 속 질서미는 소근거림에 일침을 가한다. 두터운 현(絃)소리 이어지며 막이 내린다. 내 마음에 한 줄기 강이 흐른다. 침묵의 강이다.

‘Murmur’

* 사진_강선준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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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LEADING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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